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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책 리뷰

명작 리뷰 -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를 읽고

by 강삶 2021. 11. 28.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는 브라질의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쓴 작품이다. 책 내부에서 자아의 신화라고 일컫는 각자의 꿈을 대하는 여러 등장인물의 내용을 담았다. 코엘료 작가 특유의 신비주의적, 운명론적 세계관이 물씬 느껴진다. 작가가 내세운 주인공은 양치기 산티아고이지만, 산티아고가 관계를 맺는 주변인이 자아의 신화를 대하는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삶이라는 개인의 신화에 대한 작가의 세심한 관찰이 돋보인 장치다. 특히나 꿈의 성취를 목전에 두고, 그 이후를 두려워하며 결국 메카로 떠나지 못한 상점 주인의 선택은 매력으로 다가온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기를 독려하면서도, 자아의 신화를 대하는 개인의 모습을 다각면으로 비춰내면서 소설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한다.


줄거리

 신학교를 다니던 산티아고는 더 넓은 세상을 견학하고자 한다. 따라서 신부가 되길 거부하고 가족을 설득해 양치기가 된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에서 양치기 생활을 하며 여행을 하던 산티아고는 한 마을에서 만난 소녀 때문에 정착을 고민한다. 그때 연속으로 해괴한 꿈을 꾸고는 해몽을 위해 집시인 노파를 찾아간다. 노파로부터 꿈이 피라미드에 도착하면 찾게 될 보물을 예지한 다는 것을 듣고, 정착과 모험 사이에서 갈등한다. 고민을 거듭하던 산티아고는 자신을 왕이라 칭하는 한 노인에게서 자아의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보물을 찾기 위해 이집트로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보물을 찾는 여정에서 진짜 ‘연금술사’를 만나게 되고, 결국 피라미드에 도착하게 된다.


자아의 신화

양들은 목초지가 바뀌는 것이나 계절이 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해. 그저 물과 먹이를 찾는 일 밖에 모르지. 하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지도 몰라.

 연금술사의 주된 내용은 자아의 신화이다. 코엘료가 묘사항는 자아의 신화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꿈이며, 도달해야만 하는 이상향이다. 자아의 신화를 포기하고 마음의 소리에 입을 다문채, 살아가는 샌님들을 비판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단지 살아가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말고, 내가 진짜 원하는 나의 자아의 신화를 써 내려가라고 독려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코엘료 본인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운명과 신비주의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네 이 땅 위 모든 이들은 늘 세상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다만 대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네.

 운명에 대한 풍부한 은유가 적잖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 운명은 필연이자 소명이고, 세계로 표현된다. 세계는 피조물이자 세계 그 자체인 인간들이 자아의 신화를 이루도록 한다. 자아의 신화를 거부하고 눈을 돌린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는 표지라고 하는 일종의 계시가 내려온다. 긴박한 국면을 타파하는 방법이 다소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으나, 오히려 사건을 대하는 그 방식이 책에서 자아내는 운명론적인 서사를 극대화하는 상승효과를 만들어낸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내 삶에 존재했을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 발을 멈추고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았다면 이윽고 발견했을 비밀스러운 '표지'들을 고찰하게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삶에서 자신 앞에 놓여진 자아의 신화와 그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주어진 신화의 구축을 돕기 위해 신은 운명적인 도움을 내려주지만, 그것을 잡아내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자아의 신화를 사는 자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네,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세.

 최고의 보석을 발굴하기 위해 수 백만개의 돌을 부수었던 광부는 마지막 단 하나의 돌을 홧김에 걷어차 버린다. 그것이 지금껏 자신이 바라 왔던 최고의 보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말이다. 알라를 믿는 아프리카의 상인은 충분한 돈을 축적했음에도, 메카로 순레를 떠나지 못한다. 메카를 찾아가 순례자의 성취를 이루는 그 순간 꿈을 이룬(그리고 동시에 잃은) 자신이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자아의 신화를 목전에 두고서도 놓쳐버린다.


왜 '연금술사'인가?

 

 연금술이란 납이나 구리 같은 값이 싼 금속으로 금이나 은을 만들려 했던 시도이다. 책을 읽다 보면 코엘료가 연금술이라는 소재로 글을 창작한 이유를 자연스레 깨닫는다. 연금술사란 결국 삶에 대한 깨달음에 목마른 사람들이다. 적어도 현실에서, 금이 아닌 납과 같은 귀금속을 금으로 빚어내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금이라는 물질은 결국 꿈의 은유이고 연금술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아의 신화'를 쫓아 방황하는 우리 모두이다. "우린 모두 스스로 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코엘료는 그렇게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이 어른들의 동화라 불리는 것이 아닐까. 

코엘료는 또한 연금술사의 세 부류를 제시한다.

1.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


-자아의 신화를 모르며, 그걸 이룰 방법과 능력 조차 없는 사람

2.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좌절하는 사람


-자아의 신화를 모르고 두려워하지만, 방법과 능력을 마련한 사람

3.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 방법을 깨달은 사람

책을 전부 읽는다면, 우리는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이 산티아고라는 것을 느낀다. '자아의 신화'라는 금을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과정에서 연금술이라는 수단이 있을 뿐, 결국 중요한 것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미지로 내딛는 용기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산티아고는 연금술사에게서 금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와의 합일이라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연금술 없이 '자아의 신화 건설'이라는 금을 만들어 낸다.

파울로 코엘료는 결국 포기하지 말고, 꿈을 향해 달려나가라는 말을 당부하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성공신화는 우리에게 지독하게 달콤한 은유로 다가온다. 하지만, 나의 신화만큼은 스스로 일궈보는 것이 어떨까. 그게 진짜 '황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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